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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양천구

오목교의 유래

오목교의 건설 과정에서 얽힌 전설 



현재는 양천구와 영등포를 이어주는 다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양천구는 대규모 주택단지이기 때문에 이들이 경제활동을 벌이는 도심지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다리가 만들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에 양천구 지역은 농촌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다리가 필요 없었으며 김포와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필요했던 다리가 바로 오목교입니다. 오목교가 언제 건설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인천항이 서울의 외항으로 발전하면서부터일 것이라는 짐작이 됩니다. 이런 연유로 현재의 오목교에 다리의 건설 필요성이 생겼을 것입니다.















한강으로 유입되는 안양천은 원래 이름이 오목내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는 많은 개울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오목교 근방에 이르면 이들 개울에서 나온 물길들이 한데 모이면서 하천바닥을 움푹하게 골을 만들었고 이처럼 골이 형성되어 움푹 들어간 곳을 '오목하게 만들어진 내'라는 뜻으로 오목내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오목내에 다리를 건설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이곳에는 물살이 세어서 다리를 건설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통행량이 많아져 다리는 건설해야 했고 주민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이 다음과 같은 전설로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이곳의 물살이 세어 도저히 건널 수가 없게 되자 동네사람들 이 다리를 놓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매양 다리를 놓을 때마다 떠내려가므로 동네 사람들은 달리 방도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때 한 늙은 스님이 지나 가다가 떠내려가는 다리를 붙잡아 매는 모습을 보고 '쯧쯧! 오동나무로 다리를 놓으면 쉬울 것을...' 이라고 하며 지나갔다. 이 말을 들은 인부 한사람이 급히 달려가 무슨 말인가하고 되묻자 '웃여울에서 오동나무를 떠내려보내 멈추는 곳이 다리를 놓을 곳인데 괜한 장소에서 애쓰며 다리를 놓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라며 오히려 힐책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속는 셈치고 노승의 말대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근방에는 오동나무가 하나도 없으므로 멀리 남쪽에 있는 칼산에서 오동나무를 베어 바로 안양천 물에 띄우자 과연 지금의 오목교 근방에서 멈추므로 이곳에다 다리를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다리가 떠내려가는 일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다리를 오동나무다리라 불렀다."

이렇게 건설된 오목교는 이후 양천구 지역의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이 팽창하면서 영등포지역이 공업단지와 상업단지로 변모하면서 양천구 지역의 주민들은 이 다리를 통하여 그곳을 왔다갔다 했으며, 장마가 져서 다리에 물이 넘쳐 건너가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배를 띄워서라도 넘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다면 오목교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역할을 했을 것인가는 자명한 이치입니다. 세월이 흘러 양천구 지역이 주택단지로 변모하면서 오목교에는 계속 새로운 다리를 설치하였고, 옛날에 세웠던 나무다리와 장마때 지나던 배의 흔적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오목교 건설과정의 전설이 전해져 당시 사람들이 오목교를 건설해야만 했던 절박한 필요성과 무수한 어려움을 뚫고 오목교를 건설해 나가는 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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